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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소개 > 지명유래

궁류면 예동마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3007
등록일
2003.08.11
읍면
궁류면
첨부

이 마을도 옛날 합천의 궁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역시 「궁시」란 지명과함께「궁시아랫땀」으로 알려진 마을로 지금도 법정동리는 평촌리에 포함된다. 평촌을 웃땀(웃마실)로 부르고 예동을 아래땀(밑마실)으로 하면서 거부감이 있어서 행정구역의 정비와 함께 한자지명을 정하게 되자 어질고 예절바른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란 뜻에서 예동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궁시(궁소)」마을 유래에서와 같이 신라시대 어느 왕이 머물렀던 행궁소 중 세곳이 있었다고 하는데 평촌, 예동, 벽계를 들고 있고 이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전설과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예동마을도 산자락에 위치하지 않고 들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셈인데 동네 옆으로 큰 개울이 흐르고 있고 앞뒤로 너른 논들이다. 큰보들(가장 큰보의 물을 대는 들), 새보들(새로 막은 봇물을 대는 들), 새들은 새로 개답한 들이라는 뜻이라고 하며 동네 앞산에「개장골」이라는 곳은 옛날 어린아이가 죽게 되면 갖다 묻는 곳이라고 한다. 마을 앞 들가운데는 소나무와 기목등 숲이 우거진 둔덕이 있는데 「새청당」이니 새칭이 숲이라고 부른다. 이곳이 바로 당산나무가 있는 곳으로 동신제를 올리기도 하였다. 마을 뒤로 입살이 재를 넘으면 정수암이 있던 입사마을이고 도틀재는 갑을골로 통하는 잿길로 베틀에 딸린 도루마리처럼 생겼다는데서 만들어진 지명이라고 한다. 또 옛시절 소꾼과 풀꾼들이 지겟자리로 삼았던 독덤이 재밑에는 화적패 두목으로 유명한 정광태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정광태는 합천사람인데 정수암이 있던 입사골짜기에 은거하던 의적이었다는 설과 또 관가나 곡창을 털거나 장사꾼을 덥치는 큰 도적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마을에는 1940년 11일15일에 개교하여 1991년 3월1일 분교장이 되었다가 1998년 3월 1일 폐교가 된 평촌초등학교가 있다.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산밑에 문화류씨 문중재실인 첨모재가 있으며 가장처음 터 잡은 문화 류씨가 35집, 정·김씨가 3집씩이고, 서·고씨가 한집씩 모두 40세대 남짓한데 조금 떨어진 곳에 절경 명승지로 알려진 봉황대가 있다. 흔히 제2의 금강산이라고도 과장j하는 소개도 있지만 어지럽게 솟은 바위덤, 색문같이 생긴 석문, 울창한 숲, 소문난 약수천 등 경치가 썩 좋은 곳이다. 옛날 선비들이 모여서 시회도 열고 풍류를 즐기던 봉황루는 퇴락하여 볼품없이 되었고 그 아래 있던 성덕암도 터만 남았을 뿐이다.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는 봉황산은 한적하고 운치있는 경관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산밑에 전형식 면장의 송덕비가 서 있고 길 양쪽으로는 여러 가지 불교적인 조형물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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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 궁류면 총무팀 
  • 연락처 055-570-4822
  • 최종수정일 2023-01-18